'미술 실험실'이 1년 만에 돌아왔다…'괴짜 5인방'과 함께

입력 2023-02-07 18:36   수정 2023-02-08 00:20


“사진 같다.” 사물이나 풍광을 세밀하게 그린 그림에는 이런 칭찬이 따라붙는다. 사진은 그 반대다. “그림 같다”는 게 최고의 칭찬이다.

노상호 작가(37)는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사진과 그림을 뒤섞은 작품을 제작했다.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여러 합성 이미지를 만든 뒤 이를 캔버스에 물감으로 옮긴 것. 이렇게 그린 ‘홀리’ 연작에는 머리가 두 개 있는 말, 토끼 귀가 달린 개 등 기괴한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노 작가는 “사진과 그림, 디지털 이미지와 아날로그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는 현실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서울 원서동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낭만적 아이러니’는 노 작가처럼 실험적인 작품세계를 펼치는 국내 현대미술 작가 5명을 소개하는 전시다. 전시명부터 어렵다. 미학 교과서에 나오는 용어로, ‘디지털과 아날로그 등 서로 상반된 개념을 대비해 아름다움을 이끌어낸다’는 뜻이다. 전시작도 대체로 난해하다. 그런데도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상업 갤러리지만 미술관처럼 실험적인 전시를 열어온 아라리오가 내놓는 무대를 기다려온 미술 애호가가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다.
새 둥지로 옮긴 아라리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은 지난해 1월 중순부터 전시를 쉬고 소격동 갤러리를 원서동 아라리오뮤지엄 옆으로 옮기는 작업을 벌였다. 아라리오뮤지엄 건물은 과거 공간 종합건축사무소 사옥(공간사옥)으로 쓰인 등록문화재다. 유명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했다. 강소정 아라리오갤러리 디렉터는 “기존 뮤지엄과 함께 일종의 ‘미술 복합단지’를 완성하기 위해 ‘갤러리 명당’으로 꼽히는 국립현대미술관 옆자리에서 옮겨온 것”이라고 말했다.

갤러리가 들어선 곳은 지하 1층~지상 6층짜리 건물이다. 5~6층에선 창덕궁과 원서공원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하지만 사무실로 쓰던 공간이어서 미술 작품을 전시하려면 손을 봐야 했다.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나가사카 조에게 리모델링을 맡겼다. 갤러리 관계자는 “기존의 고풍스러운 외관을 유지하면서 뮤지엄 건물과 조화를 이루는 게 목표였다”고 했다.

그래서 나가사카는 건물의 외관을 튀지 않는 검은 빛으로 꾸몄고, 갤러리 입구인 지하 1층은 공간사옥과 어울리게 회벽돌로 마무리했다. 반면 내부는 갤러리의 전형인 흰색 사각 형태로 만들어 대비를 줬다. 기존 1층과 2층을 터 층고도 높였다. 전시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 벽에 걸 수 있는 작품 수를 줄이기로 한 것이다.
전속작가 ‘5인 5색’
이번 전시는 5인 단체전이지만 갤러리가 작가 한 명당 한 개 층을 배정해준 덕분에 개인전 다섯 개를 보는 느낌을 준다. 스타트(지하 1층)는 안지산(44)이 끊는다. ‘고라니 사냥’은 늙은 사냥꾼이 설원에서 고라니를 사냥하는 광경을 그린 연작이다. 자연에 대한 경외감, 야생에 내던져진 인간의 긴장과 불안감을 표현했다. 바통은 김인배 작가(45·1층)의 개념미술 작품들이 이어받는다. 분필을 만드는 재료로 칠판을, 칠판 재료로 분필을 만든 ‘칠판과 분필’ 등 고정관념을 뒤집는 작품들이다.

2층의 이동욱 작가(47)는 피부를 연상시키는 분홍색 인공물질과 건축 재료인 허니콤을 이용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벌거벗은 작은 인물들이 쇠로 된 거친 구조물에 갇혀 있는 모습은 인간의 연약함을 상징한다. 3층의 노상호 작가를 지나 두 층을 올라가면 프린트한 사진을 붙여 조각처럼 만드는 권오상 작가의 ‘사진조각’ 신작들을 만날 수 있다. 만화 ‘원피스’ 문신을 한 일본 야쿠자, 가수 ‘잔나비’의 최정훈 얼굴을 한 작품 등이 인상적이다.

창밖의 창덕궁 풍경도 예술 작품만큼 아름답다. 갤러리 관계자는 “5층은 이번 전시에서만 일반 관객에게 개방하고, 이후엔 VIP 공간으로 쓸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3월 18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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